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티 도팽 루이 (문단 편집) == 플랑드르에서의 삽질 == 1708년 루이 14세는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손자에게 군사적 역량을 학습하라는 의도로 방돔 원수가 있던 플랑드르 전선에 총사령관으로 파견하였고 손자에게 방돔 원수의 말을 잘 들으라는 진심어린 충고를 해 주었다. 그랑 도팽 루이는 장군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온화한 성격이었기에 손자도 베테랑 장군의 말을 들을 거라 기대했으나 '''이는 오산이었다.''' 아버지와는 달리 루이는 매우 오만하고 독선적인 성격이었고 자신이 플랑드르 전선을 감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프랑스와 스페인에 비극을 가져왔다. 루이는 플랑드르에 도착한 뒤 열심히 일하는 방돔 원수를 까내렸고 전쟁장관 샤미야르의 말도 듣지 않는 오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돔 원수는 위이를 공략하자고 제안했으나 루이는 그 말을 묵살하고 브뤼셀 정면공격을 주장해서 결국 브뤼셀 공격을 하려 했으나 당연히 말버러 공작에게 막혔다. 오우데나르데 전투가 벌어질 때 동맹군은 다리를 건너는 중이었기에 방돔 원수는 공격을 개시했고 루이에게 좌측면을 공격하라고 요청했으나 루이는 황당하게도 그냥 가만히 있었고 방돔은 고립된 상태로 힘겹게 전투를 벌이다 결국 패배했다. 더욱 더 충격인 것은 루이가 방돔 원수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당대인들은 루이의 삽질을 잘 알고 있었고 루이는 아버지인 그랑 도팽에게 비판받았다. 그럼에도 루이는 여전히 오만했고 이는 또 다른 참사를 만들어냈다. 이후 방돔 원수는 루이에게 동맹군 보급선을 공략하자고 제의했으나 루이는 위험하다고 거부했다. 이 황당한 사태에 루이 14세조차 손자에게 편지를 보내 위험을 감수할 때도 있어야 한다며 비판했다. 그리고 동맹군이 릴을 포위하자 방돔 원수는 즉각적인 공격을 요청했으나 루이는 또 거부했고 결국 릴은 함락되었다. 루이 14세는 손자의 무능함에 답답해했고 프티 도팽 루이는 베르사유로 돌아와서도 변명으로 일관해서 백성들에게 온갖 욕을 먹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프티 도팽의 유약함을 비난하는 노래까지 만들어질 정도였으니 루이의 삽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프티 도팽의 삽질로 프랑스 북부 방어선에 큰 균열이 생겼고 이는 빌라르와 부플레르 원수가 수습해야 했다. 그리고 루이가 비난한 방돔 원수는 1710년 스페인 전역에서 맹활약하며 프티 도팽이 틀렸음을 입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